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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감시(Pharmacovigilance)란 무엇인가?

by safetyjinny 2023. 6. 28.

제약업계로 진출하려는 약대생 중에는 약물감시 업무로 진출하고자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약대 학과 커리큘럼에는 약물감시 업무와 관련된 수업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하니 관심이 있더라도 진로로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약물감시는 약사라는 전문성을 살려서 수행할 수 있는 고유한 업무 영역인데 약대생들이 진출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이러니한 상황인 것입니다. 그러나 PV업무는 약학 전공자들만이 진출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현재 PV 분야에서 일하시는 분들 중에는 약대 출신이 아닌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하지만 다른 전공의 학생들이 약물감시에 대해서 접하기란 더욱 어렵겠죠. 약대생들뿐만 아니라 약물감시 업무에 관심이 있는 모든 분들의 PV 업무로의 진출에 도움을 드리고자, 약물감시 업무란 무엇인지, 어떤 업무가 진행되는지, 약물감시 업무를 담당하려면 어떠한 자질을 갖추어야 하는지 미력하나마 아는 것을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약물감시(Pharmacovigilance)의 정의

약물감시라는 용어에 대해서 먼저 설명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말로는 약물감시, 영어로는 Pharmaovigilance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의미인지 단어만 들어서는 업무를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약물감시라는 용어는 의약품의 안전에 관한 업무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새롭게 만들어진 용어입니다. 그래서 처음 듣는 분들은 익숙하지가 않을 것입니다. 먼저 영어로 "Pharmacovigilance"는 “약”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Pharmakon"과 “계속 깨어 있으면서 지켜보고 경계한다” 는 뜻의 라틴어 "Vigilare"를 합친 합성어입니다. 좀 쉬운 단어를 합쳐서 만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어려운 두 단어를 합쳐서 단어만 봐서는 의미를 알기가 어렵습니다. 두 단어의 뜻 그대로 약물을 사용하는 동안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본다는 뜻입니다. 한국어도 이런 의미를 담아 "약물감시"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약물 사용에 대해서 지켜보고 경계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WHO는 “Pharmacovigilance is the science and activities relating to the detection, assessment, understanding and prevention of adverse effects or any other medicine/vaccine related problem.”로 정의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의약품 등의 안전에 관한 규칙 [별표 4의3] 의약품 등 시판 후 안전관리 기준”을 통해 약물감시의 개념을 “의약품등의 이상사례 또는 안전성 관련 문제의 탐지·평가·해석·예방에 관한 과학적 활동”으로 WHO 정의와 동일하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약물감시의 필요성

약물감시라는 용어의 정의만으로는 약물감시의 의미가 와닿지 않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의약품의 이상사례 또는 안전성 관련 문제를 어떻게 탐지하고 평가하고 해석하고 예방한다는 것인지 전혀 예상이 되지 않습니다. 약물감시를 이해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활동을 왜 하는지 그 이유와 중요성에 대해서 먼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질병이나 증상을 치료/예방하기 위해서 의약품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의약품은 질병치료 목적에 부합되는 유익성(benefits)을 가질 뿐 아니라, 부작용이 수반되므로 위해성(risks)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의약품은 규제기관(국내는 식약처)의 허가를 받아야지만 판매를 할 수 있고, 허가된 의약품은 유익성이 위해성보다 크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균형을 유지해야 허가가 유지됩니다. 그런데 시판이 허가된 약이라고 하더라도 그 약에 대해서 완전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의약품은 오랜 기간 연구과정을 거쳐 개발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의약품 개발을 위해 원천기술을 연구하고, 개발 후보물질을 선정하여 여러 임상시험을 거친 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허가를 받아 시중에 판매하게 됩니다. 하지만 시판 전 오랜 기간을 거쳐 여러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개발과정에서 안전성 데이터를 수집하더라도 제한적인 연구 기간과 한정된 시험 대상자로 인해 모든 약물이상반응에 대해서는 파악이 불가능하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의약품은 시판 후 광범위한 환자에게 장기간 사용되기 때문에, 시판 전뿐만 아니라 시판 후에 이르기까지 전주기적으로 의약품의 위해성을 관리하는 약물감시활동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약물감시의 중요성

이러한 약물감시의 중요성을 전 세계에 알려준 사건으로 탈리도마이드 복용으로 인한 약화 사고가 인류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입니다. 1957년 시판되어 불면증, 감기 등에 진통 효과로 사용된 탈리도마이드는 진토, 신경안정 효과가 있어서 독일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임신 중 입덧을 완화하기 위해 많은 임산부들에게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임신 중 탈리도마이드 복용으로 인해 전 세계 곳곳에서 약 1만여명의 사지 결손 기형아가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특히 임신 첫 3주에서 8주 사이에 복용한 경우 예외 없이 기형아를 출산한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태아의 팔다리가 생성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당시에는 임신 중 약물투여가 엄격하게 제한되지 않았고, 태아에 대한 잠재적인 위해성이 충분히 연구되지 않은 채 시판 허가가 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대규모 약화 사고가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1961년에 탈리도마이드 시판이 중지되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의약품은 유효성뿐만 아니라 안전성 연구 또한 중요하다는 인식이 대두되었습니다. 이후 영국, 미국 등의 선진국을 중심으로 의약품 약물감시 제도가 도입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탈리도마이드는 이러한 부작용으로 인해 영원히 사용할 수 없는 의약품으로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되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후 연구를 통해서 탈리도마이드의 새로운 모세혈관이 만들어지는 것을 억제하는 혈관 신생억제효과 기전이 밝혀지면서 이 약물의 치명적인 부작용 발생은 사용량이 아닌 사용 시기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혈관 신생 억제 효과는 한센병환자의 합병증을 줄이고, 다발성 골수종 환자의 암세포를 억제하는데 효과적으로 작용하여 1998년과 2006년 각각의 치료제로 승인되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습니다. 약물감시의 위해성관리계획(Risk Management Plan)의 한 종류인 임신예방프로그램(Pregnancy Prevention Programme, PPP)을 통해 임신 시에 기형을 유발할 수 있는 위해성을 관리하여 꼭 필요한 환자들은 효과적으로 약물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임신예방프로그램은 약물을 복용하는 동안 임신을 하지 않도록 환자를 교육하고 의료진이 환자 상태를 확인한 후 제약회사에서 승인한 경우에만 약물을 처방받을 수 있도록 하여 기형아 출산의 부작용 발생 가능성을 없애는 강력한 위해관리프로그램입니다. 이렇듯 위해관리를 철저히 하여 약물을 보다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약물 감시의 역할입니다. 즉 의약품이 가진 위해성을 감소시키고, 유익성은 극대화하여 환자를 보호하고, 효과적으로 의약품 사용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약물감시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